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The Practice of Management(경영의 실제)에서 “기업 활동 중 오직 마케팅과 혁신만이 이익을 창출할 뿐 나머지는 모두 비용요소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측정 가능한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하는 마케팅의 현주소에 실망하고 있다. 이렇듯 최고경영자가 마케팅을 투자라기보다는 비용으로 보는 경향이 날로 두드러지고 있고 이로써 마케팅이 기업에서 차지하는 입지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지난 20년간 마케팅은 기업의 성장 동력으로서 중요 역할을 해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막강한 유통 채널 등장, 글로벌 경쟁의 심화, 상품의 일반재화, 상품주기의 단축 등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그 비중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최고경영자들이 가격 결정 및 고객 충성도와 같이 마케팅 관련 도전 과제들을 최고의 난제로 인식하고 있음은 그간의 연구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 과제에 마케터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아직도 마케팅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최고경영자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기 위해서 마케터들은 우선, 제품(Product), 가격(Price), 입지(Place), 판촉(Promotion)으로 구성되는 4P 전술에서 탈피해 기업 이윤 향상에 초점을 맞춘 전략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또한, 최고경영자가 주목할 만한 개혁 의제를 주도해야 한다.
다른 부서들은 이미 나름대로의 개혁 의제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영업부서는 기업 리엔지니어링 운동을, 재무부서는 실적을 측정하는데 있어 부가가치의 개념 도입을 적극 주도하고 있으며 회계 부서는 균형 잡힌 재무제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전략적 사고
마케팅에 있어 기본적인 개념은 시장세분화 전략과 마케팅 믹스(4P)라고 할 수 있다.
시장세분화란 시장을 마케팅 믹스(4P)에 유사하게 반응하는 몇 개의 동질적 소비자 집단으로 나누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마케터는 어떤 마케팅 믹스가 유효한지를 결정하게 된다.
시장세분화의 문제점은 기업 내부에서 마케팅이 차지하는 역할을 전술적인 수준으로 국한시킨다는 것이다. 마케터들이 기업에서 전술 차원을 뛰어넘어 전략적 차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면 전략세분화와 시장세분화를 구분해서 각기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4P이외에 3V를 추가로 적용해야 한다.
전략세분화를 위해서는 기업 고유의 ‘가치 네트워크’를 개발해야 한다. 시장세분화와는 달리, 마케팅 믹스(4P)에 국한된 변화만으로는 전략을 세분화할 수 없다. 전략세분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3V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3V란
1)Valued Customer: 어떤 고객을 유치할 것인가?
저가 항공사인 이지젯(EasyJet)은 비즈니스 클래스에 주력하는 기존의 주요 항공사와는 달리
자신이 직접 항공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일반고객에 주목한다.
2)Value Proposition: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
이지젯은 고객들에게 파격적인 저가 상품을 제공하는 대신 기존의 항공사가 제공하는 부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즉, 기내식, 사전예약 좌석배치, 비즈니스 클래스, 주요 고객 마일리지, 환불 가능한 항공권 등을 제공하지 않는다.
3)Value Network: 어떻게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가치 있는 고객에 대해 특화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이지젯은 업무의 상당부분을 아웃소싱함으로써 운영을 간소화했고,
직접 예약만을 받는다.
위와 같은 3V 모델을 통한 전략 세분화를 이해할 경우
마케터는 몇몇 중요한 쟁점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마케팅을 기존의 전술적 지위에서 탈피시킬 수 있다. 더불어 3V가 제기하는 도전에 응전함으로써 마케팅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 업계 서비스에 불만이 있는 소비자(예를 들어 항공 서비스 소비자)와 제공되는 서비스와 전혀 무관한 집단(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을 파악하고, 비용을 더 삭감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델 컴퓨터가 소매망을 우회하여 소비자와 직거래했던 예를 생각할 수 있다), 고객에게 어떤 색다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개인용 컴퓨터 주문 제작)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마케팅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고객에게 우월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新가치 네트워크를 개발할 수 있을까?
기업은 마케팅 혁신을 통해 이 목표를 이룰 수 있기를 원한다.
마케터들은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전사적 개혁 의제에 집중하고, 고도의 마케팅 전문지식을 겸비해야 하며, 부서를 넘나드는 조율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할뿐만 아니라, 성과 지향적 사고를 해야 한다.
단순 상품 판매에서 벗어나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특정 브랜드 이름을 내걸고 규격 상품을 제공하는 전통적 마케팅 기법으로는 더 이상 고정 고객을 확보할 수 없다. 이제 기업은 신속하고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
백스터 인터네셔널(Baxter International), WW그레인저(W. W. Grainger),
홈데포(Home Depot), IBM 등 많은 기업들이 이와 같은 변화를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홈데포는 자체 연구를 통해 전통적인 ‘두잇유어셀프(do-it-yourself’s)’의 개념이 ‘두잇포미(do-it-for-me)’로 진화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홈데포는 서비스 역량을 한층 강화하고 “찾고 계신 물건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보다는 “어떤 것을 만들 계획이신가요?”라는 질문을 고객에게 던질 수 있도록 직원을 훈련시키는 등 단순한 상품 제공보다는 솔루션 제공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마케터들을 위한 기회
고객에게 상품이 아닌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을 갖추어야 하고, 고객과의 대면 현장에서 한층 높아진 책임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운영 및 조직에 있어 융통성을 제고하고, 공급사, 경쟁사 및 수많은 파트너십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능력 등을 갖추어야 한다. 더불어, 이들 솔루션의 가치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가격 책정에 있어서 유연성을 제고해야 한다.
IBM이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과거 상품 판매기업 당시에는 강점으로 작용되었던
분권화된 조직, 집중화된 기술, 막강한 상품 부서 등은 오히려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천편일률적인 접근법을 버리고 글로벌 유통 파트너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것도 마케터들이 도전해볼만 하다. 유통 채널은 놀라울 정도의 통합과 고도화를 이루어냈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유통 업체의 강화된 역량에 놀라고 있다. 프랑스의 까르푸(Carrefour), 독일의 메트로(Metro), 영국의 테스코(Tesco), 미국의 월마트(WalMart)를 포함한 대규모 유통업체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거의 동일한 상품도 가격이 국가마다 40%에서 60%까지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유통업체는 세계 시장에 적용되는 단일 가격을 요구함으로써 가격 책정에 투명성을 확보했다. 또한, 유통업체들은 군소 제조 브랜드들을 상호 경쟁구도로 유도하고 이들 브랜드를 장악하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최고경영자들은 차별화된 소수의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 마케터들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냉정히 검토하고 취약한 브랜드는 폐기, 통폐합 및 매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고객 및 매출 성과에 타격을 가하지 않는 범위에서 어떻게 저조한 브랜드를 폐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성공적인 브랜드 합리화는 잔존 브랜드에 한층 집중함으로써 매출 및 수익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소비재를 생산하는 업체는 국가 및 상품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과거 관행에서 탈피, 글로벌 매출의 45%에서 65%를 차지하는 주요 유통채널 10∼15곳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마케터들도 국가, 브랜드 및 특정 상품에 기초한 전략이 아닌, 핵심 유통채널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이 마케팅 부서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이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두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고객 존중은 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불행히도, 최고경영자가 고객이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간파해내지 못하거나 판매 및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간단한 상징적 제스처만으로도 이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Mandarin Oriental Hotel)의 최고경영자가 호텔 로비를 지나다가 가득 찬 재떨이를 자신이 직접 비움으로써 직원들에게 최고 경영자가 사소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최고경영자는 고객의 편익을 대변하는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시스템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품질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사우스웨스트 항공(Southwest Airlines)의 고위 간부는 자사 직원의 대 고객 서비스를 점검하기 위해 고객 서비스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소니의 고위 경영인들도 매뉴얼을 사용해 직접 비디오 리코더를 설치해 보기도 했다. 이와 같은 활동은 좀더 용이한 메뉴 기반 애플리케이션의 개발로 이어졌다.
기업의 역량은 특정 국가 및 산업에 결부된 마케팅 전문지식을 과감히 포기하는 데서 나온다. 최고경영자가 마케터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뒷북을 치기보다는 앞서서 예측하는 통찰력이고, 전술가가 아닌 혁신의 주체가 되는 것이며, 마케팅 플래너가 아닌 시장 전략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마케터들은 미래를 전망하는데 있어서 단지 시장 조사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마케터들은 이러한 도전과제에 응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위계질서, 국가 및 기능별 경계, 그리고 4P만 버리면 충분치 않은가?
Financial Times (英) 2005.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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